교회를 세우는 은사, 사랑으로 전하는 덕
오늘의 묵상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십시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입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여러분이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합니다.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여러분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여러분에게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겠습니까.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는 없으나,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십시오.
묵상 메시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다양한 은사는 결코 개인의 영성이나 특별함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풍성한 은사를 받았음에도 이를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아 공동체 안에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교회를 권위 있게 세우는 '예언'을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방언이 무익하다는 뜻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는 공동체에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은사의 활용 기준은 언제나 '교회의 덕을 세우는가'와 '사랑이 바탕에 있는가'에 있습니다. 아무리 신령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할지라도 형제자매가 이해할 수 없고 배려가 없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 우리의 은사 역시 공동체를 살리고 세우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입술과 행동이 사람을 세우고 격려하는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만족이나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작은 일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잔치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지체들을 대하며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